2025. 5. 2. 06:18ㆍ카테고리 없음

얼마 전 병원 다녀오는 길에 본 버스 정류장의 풍경
누가 왜 무엇을 벗어둔 것일까
안녕하세요?
블로그에 아주 작은 숫자입니다만 구독자가 남아 있으니 인사가 덜 머쓱하네요. 감사합니다. ^.^
마지막에 글을 올린 게 2023년 11월이었습니다.
원래 블로그를 그만둘 때 목표한 "글 쉬기" 기간은 1년이었는데 반 년이 더 걸렸네요.
일 년 반 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잘 지냈습니다.
그동안 대학을 졸업했고 결혼(에 준하는 서약)도 했습니다.
글을 쉰다고 했습니다만 돈벌이로든 취미로든 정말 많은 글을 썼습니다.
거의 매일 매일 최소한 수천 자 이상을 썼으니 반년은 날려먹고 365일만 곱해도 365×5천 자=1825000... 백만 자가 넘는 글을 쓴 셈이군요!!
그 중에는 저에게 돈을 벌어다 준 글도 있었습니다. 몇십 원을 받은 글도 있었고 3천만 원에 달하는 돈을 가져다준 글도 있었지요.
블로그에 글 쓰기를 쉬기로 마음먹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블로그가 아닌 곳에 쓰던 글과 블로그에 쓰던 글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제 이름을 걸고 쓰는 글과 여기에 쓰는 글은 정말 많은 부분이 달랐습니다. 아예 글을 쓸 때 인격 자체를 갈아끼운 것 같기도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느냐면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였지요. 인기를 얻고 싶기도 했지만 누군가를 따라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숨기고 싶거나 제발 좀 없애고 싶은 것들이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운좋게도 그런 것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인생이야 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만...
저는 신학theology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말은 신학입니다만 목사/종교지도자의 길을 갈 생각은 아니라서 종교학, 문학, 인류학, 철학 등등을 이래저래 다 줏어 먹고 그 공부를 합니다.
많은 학문 분야 중에서도 신학을 고른 건 바로 이런 줏어 먹기를 하기에 가장 좋은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신학은 (다른 많은 학문들도 사실은 그렇습니다만) "공부의 주제"가 중심이 아니고 "공부의 주체"가 중심이거든요. 신학의 중심은 바로 그 신학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종교 공동체입니다. 기독교 신학을 떠받치는 것은 기독교를 믿는 수십억의 실존하는 사람들이고요. 불교학도 마찬가지로 불교를 믿는 사람들, 이슬람 신학은 무슬림들이 그 학문의 근거이고 존재 이유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는 신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거의 모든 학문을 다 할 수가 있(고 또 사실은 해야 합)습니다. 본인의 학문이 소속된 종교 공동체에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한 가지 기준만 충족하면 됩니다.
신학의 이런 특성은 신학의 연구 주제에도 구조적으로 적절합니다.
신학의 근본적인 물음은 이것입니다. "신의 뜻을 어떻게 따를 것인가?" 여기에서 많은 질문이 파생되는 겁니다. 신이란 게 애초에 있기는 한가? 그게 뭔가? 이런, 언뜻 보면 저 질문에 선행해야 할 것 같은, 이미 해결되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질문들까지...
그래서 저것만큼 인간의 삶에 본질적으로 중요한 질문은 많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는 사람은 당연히 인간의 삶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의 종이라든가 어떤 개념, 관념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살아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자식을 낳아서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피와 살을 가지고 움직였던 사람 한 명 한 명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이런 일이 신학자들에게는 무척 중요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인간인 신학자 자기 자신과도 또한 매우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저는 운좋게 간 대학에서 운좋게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고 운좋게 좋은 대학원에 붙어 저런 공부를 계속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약 3년간 열심히 석사를 따 볼 예정입니다.
어디에서 공부를 하는지 제가 어떻게 생겼고 또 이름은 무엇인지 이런 것도 사실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블로그는 이런 이유로 익명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저는 성 소수자거든요. 아동 성폭력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동성 커플을 축복해 주었다가 파면당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저도 어쨌거나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해 또 생계 유지를 위해 써야 할 가면이 많을 겁니다.
그전처럼 신변잡기를 많이 올리는 블로그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학술적인 글을 정리해서 연재하기에는 또 그만한 욕심은 없기도 하고 그래서...
제 글이 어느 정도 재미가 없는지 혹은 재미가 있는지
어느 정도 정돈되어 있는지 혹은 과격한지
대강 감을 잡으시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을 목표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와 저에 대해서 글을 써 봤습니다.
사실 간밤에는 잠을 한 숨도 못 잤습니다. 일출을 보면서 이 글을 썼는데요.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지난 주에 꽤 긴 시간 동안 썼던 긴 글의 마감을 끝냈더니 곧장 감기가 오고 그 다음엔 생활 패턴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3~4시간 정도 집필 -> 식사 -> 기타 잡무 -> 식사 -> 샤워 후 부인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가 잠. 이라는 패턴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3~5시간 밍기적 -> 개판 식사 -> 만화 보기나 인터넷 보드게임 하기, 인터넷 서핑 등 기타 잉여 활동 -> 식사 -> 샤워 후 부인 재우고 또 인터넷 중독질 3~4시간 -> 심지어 그 후에도 잠을 못 자서 밤샘
으로 망가지더군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육체 노동을 하고 싶지는 않고 뭔가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걸 해보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블로그에 뭐라도 쓰려면 하여튼 뭐라도 좀 의미가 있는 걸 읽어야 할 테구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하면서 인터넷/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고 나면 등산도 하고 조깅도 하고 날씨도 이제 풀려 가는데... 즐거운 여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작별인사 글을 읽어 보니 제가 "나쁜 글을 많이 썼다" 라고 한탄을 해놨습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도 아니고 무슨 인간 실격 븅딱 찐따 소리를 길게도 써놨다 참... 싶었습니다만 거기에 어쨌든 조금의 진실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을 도와주고 싶다 내가 아는 걸 알려주고 싶다 내가 가진 걸 나눠주고 싶다 라는 마음은 있었는데 그걸 아무래도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하고 속상한 느낌이 있었지요.
이번에는 조금 더 잘 해 보고 싶습니다. 재미가(최소한 저한테라도) 있거나 무언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짬짬이 쓰러 오겠습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정리되지 않은 대로 놔두어 보구요.
공부를 일로 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생각을 꾸준히 정리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업무라서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무언가 멋진 마무리를 하고 싶습니다만 도통 좋은 생각이 나질 않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그 때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쉬운 것 많지만 그 때 저한테는 그게 무척 중요했었답니다. 여러모로 많은 힘이 되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인터넷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서 그 정도의 영향을 받는 일은 없어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지만요, 그 때 여기서 만났던 사람들은 다 참 착하고 젠틀한 분이셨던 것 같아요.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