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다는 마음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서 내가 하는 일을 꽤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일하기가 싫어질 때가 있는데...
뭐 일이야 누구한테든 대부분의 경우 하기 싫은거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순간을 겪겠지만은
내 경우에 그럴 때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무력감이나 피로 이런 것이 아니고 분노이다.
좀 웃기지만 "사회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있는데" 정확하게 이 기분이 든다...
물론 나도 머리로는 안다. 사회가 나에게 해준것은 너무 많아서 셀수 없다는것을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인간삶의 모든것은 대부분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기분은 무슨 정치적 마니페스토나 그런건 전혀 아니다.
난 일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즐거운 것이며(설령 존나존나존나게 하기 싫은 일이라고 해도, 억지로 하는 거라고 해도, 사람은 언제나 노동으로부터 무언가 의미를 찾게 된다) 사람은 제정신으로 살아있으려면 어느정도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이성적인 생각하고는 전혀 동떨어진 아주 감정적인 마음인데, 말하자면 아무한테도 어떤 좋은것이든 해주기가 싫은 것이다.
이 마음은 심지어 나 스스로에게까지 적용되어서 이런 기분이 강하게 오는 순간에는 밥도 해먹기가 싫고 청소 빨래 이런것도 하기 싫다. 산책 영화보기 음악듣기 이런 평소에는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들마저 천박하고 몰염치한 일처럼 느껴진다.
이런 기분이 따지자면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단순히 "와 이거는 병적인 생각이니까 그만생각하자" 라고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또 가끔은 자리잡고 앉아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은 운좋게도 이 생각을 좀 이어나갈 수 있는 고리를 찾아서 적어본다.
꾸역꾸역 밥을 어쨌든 먹고(옛날에는 이런 기분을 못이겨서 진짜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때가 있었으나 요새는 상황이 많이 좋아져서 일상생활은 거뜬함) 설거지를 하는데, 새아버지와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중학생무렵인가... 동생이랑 차를 타고 새아버지랑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내가 자우림(ㅋㅋ) 노래를 틀었었다. 안나 라는 제목의 엄마미워!!! 노래였는데 노래를 틀어놓고 막 따라부르고 있었다.
그때 교통상황이 좀 복잡했다. 그러니까 새아버지가 무척이나 화를 내면서 이제 그만좀 해라!! 라고 했는데, 그 순간 엄청나게 상처를 받았다 (중학생때 기억인데 지금까지 이렇게 생생한 것만 봐도...)
지금도 알고있고 그때도 알았다. 운전하기 좋은 길에서도 누가 시끄럽게 하면 거슬린다는 것을
그리고 아버지는 그 일갈에 딱히 어떤 감정도 담지 않았으며 상처를 입은것은 내 개인적인 문제라는 것을
그러나 아버지의 의도가 어땠는지랑은 상관없이 내가 느낀것은 수치심과 절망감이었다.
왜냐면 그 당시에 나는 어머니한테 엄청난 학대를 당하고 있었는데 주변인들중에 누구도 유의미한 도움을 주지 않았고, 새아버지만이 주변 사람들 중 그나마 좀 sane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그것은 진짜 존나 짜증나게 유치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고통에 처한 정신을 드러내는 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버지가 거칠게 거부했을 때 내가 받은 것은 내가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을 아버지가 거부했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 일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별 유감이 없다.
내가 버스를 탔는데 중삐리여자애가 막 엄마가 디져버렸으면 좋겠다는 가사의 노래를 존나크게 흥얼거리면서 지나가고있다 그러면 나도 그당시의 아버지와 비슷한 기분이 될듯
그렇지만!! 이건 나한테 꽤 중요한 기억이었다. 아버지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당한 일(가정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데 듣는이(의사 친척 경찰 선생님 등등...)가 그것을 거부하는 상황 자체가 당시 나에게 되게 흔했고
너무 흔했기 때문에 콕집어 누구의 잘못이었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어쨌든 엄청난 스트레스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큰 빙하의 딱 드러난 부분...같은 기억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랜시간 생생하게 감정적 동요까지 일으키면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기분이 무기력증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고통에 대해 무언가 말을 하려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상황...
버림받았다는 기분. 세상에 동떨어져 혼자 남은 것 같은 좌절감 그런 것들을 느끼다 보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싶어진다.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고 싶다는 생각, 기분좋고 따뜻한 교류에 대한 희망, 이런 것들을 갖는 게 바보 천치나 할 짓처럼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파괴력을 갖는 분노(=씨발 내말좀 들으란 말야)가 방향을 잃고 튕겨나온다(=씨발 아무것도 내맘대로 되는게 없으니 내가 할수 있는건 나 자신을 파괴하는 거밖에 안남았어 죽어버릴거야)
아마 내생각에는 우리가 소위 꼰대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감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싶다. 존나 항상 뭔가 출처를 알수없는 억울함을 베이스로 사람들을 대하고 그것때문에 같이있기 씨발 싫어지는 인간들 있잖음?
이런 생각을 정리하다가 오후에 여기까지 왔는데 그럼 이런 기분을 어떻게 극복해야하지?? 라고 생각하자니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것이다.
아니 뭐 나야 나니까 걍 닥치고일단씻고밥먹고사람들을만나 라고 우격다짐이라도 부려볼수있지
이런 기분을 느낀 다른 사람을 생각해보니까 좀 깝깝하드라고
세상에서 이래저래 받은 상처가 커가지고 아무하고도 조금도 이야기하고싶지않다 걍 뒤져버릴거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저렇게 말하는게 허세도 협박도 아니고 정말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심정이라면
그 사람을 어떻게해야 도와줄수 있나?... (그런 사람도 도와줘야 하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는데 나는 저런말은 절대 표면적으로 읽으면 안되고 구조신호의 일종이라고 생각함. 진짜 죽고싶으면 사나이답게 퀵점프 하지 왜 저렇게 떠들고 있겠어)
라고 생각하는데 어릴때 읽었던 예수 이야기의 한장면이 머리를 딱 스쳐갔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고 기원하셨다." (루가의 복음서 23:34)
너무 유명한 글이라(무려 성경임) 해석은 너무너무 많겠지만
저 이야기를 떠올렸을때 든 생각은,
내가 이렇게 존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는데!! 아무도 그걸 알려고 하지않고!! 씨발 아무도 거기서 나를 꺼내주려고 시도도 하지않고!! 나는 혼자 살아남았어!! 스스로 극복했단말이야!! 그러니까 아무도 나한테 무엇이든 받아갈 자격없어!! 아무한테도 조금도 좋은것을 해주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을때
그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일을 하는지 몰랐다... 라고 생각하는것이 시야를 엄청나게 넓혀준다는 것이다.
세상이 악의로 가득차 있고 다 나를 존나 외면했고 개나쁜 새끼들밖에 없어서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았다<이게 아니고,
세상사람들 다 나름대로 착하고 마음도 따뜻하고 각자 열심히 살아볼라고 애쓰는 중인데, 사람이다보니까 완벽할수가 없고 다 지 한계가 있고 해서 누구나 불행을 겪는다, 근데 누구나 그걸 잘 모른다...
라고 생각하고나면 힘이 쭉 풀리면서 화도 좀 진정된다.
에휴 화내서 뭐하냐... 이런 기분임
퇴근하고 집에 딱 들어갔는데 강아지가 존나 집안을 개판을 쳐놨다
이럴때 딱 처음 드는 생각이 이놈의 개새끼 된장발라 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걔는 개잖아
걔가 개라는걸 생각하면 화가 좀 덜 나잖음
세상에서 겪게되는 고통이 누군가의 "악의"로부터 온다는 생각은 인간에 대한 과대평가일수도 있다(ㅋㅋㅋㅋㅋㅋ)
그냥 우리모두 븅신 개새끼들인데(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남들이 자기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기를 기대하다보니 늘 실망을 하는것이지
저 생각 하고나니 참 좋았다. 좀 여러모로 기운도 났고
근데또 재밌는건 기분이 좆같지만 어쨌든 몸을 일으켜서 좀 움직여보자~ 하고 삼계탕 먹으러 가던 차에 지하철 안에서 저 예수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방구석에 처박혀있었어도 답이 나왔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