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끊은 이유 그리고 SNS

내가 하는 SNS는
1) 일단 카톡
2) 이 블로그
3) 조금 더 개인정보가 많이 드러나고 비밀번호 걸고 써서 얼굴을 아는 친구들만 보는 다른 블로그
4) 텀블러
이상 4가지다
텀블러는 몇 가지 계정만 팔로우해놓고 오직 세가지 용도로만 쓰는데
1) 영화추천 받기
2) 좋아하는 사조 그림 구경 (인상주의를 좋아함)
3) 오래된 신문의 웃긴 페이지 구경
이를테면 오늘은

이런 걸 봤다. Under The Moonbeams, John Atkinson Grimshaw 라고 하네요 확인은 안해봄
텀블러에서 올라오는 사진이나 그림들 중에 정말 우왁 할 정도로 놀랍고 좋은 것들은 확률이 1% 정도이고
나머지(위에 올린 그림도 이쪽)는 좋긴 좋지만 딱히 막 대단히 좋은 건 아닌... 그냥 그저 그렇게 즐거운 good enough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텀블러는 매일매일 올라오는 것들이 있으니까 며칠 동안 피드를 확인하지 않으면 어떤 것들은 못 보고 그냥 지나치게 되는데, 그걸 아까워하거나 매일매일 체크하듯 확인하지는 않는다. 거기 올라오는 것들 대부분이 그냥 good enough한 컨텐츠일 거란 걸 아니까
good enough한 컨텐츠가 mindblowing한 컨텐츠보다 열등하다거나 덜 중요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전자가 후자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다고 생각함
내가 하고 싶은 말은, good enough한 물건은 무엇이든 근본적으로 다른 good enough한 물건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위에 올린 저 그림을 보고 느낀 기쁨은

Autumn on the Delaware - Thomas Worthington Whittredge - c. 1875 - via Christie's
이 그림을 보고도 대충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오늘 뭔가 좋은 것을 놓쳐도 내일 그만큼 좋은 게 또 나타날 것이다. 그게 good enough의 최대 미덕이다.
반복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고 지속 가능하다는 것
내가 SNS 전반에 대해 가지는 태도도 이거랑 똑같다
앞선 글에서 트위터를 하다가 그만두었다고 썼는데
꽤 오래 사용했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한 7년?
정말 좋았다. 그 시기에 필요한 플랫폼이었고 또 필요해질 날이 올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만뒀다.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걸 그냥 good enough한 것으로 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트위터의 사용방식은 이렇다
1) 140자의 짧은 글로(<-인스타랑 다르게 트위터는 글!! 글!! 일단 글이 주가 되는 매체임. 그래서 사용자층도 좀 갈리는 듯함)
2) 일상생활을 그때그때 공유하고
3) 팔로우 언팔로우 블락 시스템을 통해서 '타임라인'을 꾸려보세요
내가 트위터를 쓸 때 좋아했었고 지금도 그리워하는 것은
'짧은 글'을 통한 소통으로 형성되는 유대집단(맞팔?들?)이다.
같은 이미지, 같은 분위기, 영화, 뭐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묶이는 거랑 같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묶이는 건 좀 다르다.
그리고 또 천재적인 것은 이 글이 책같은 긴 글이 아니라 '짧은' 글, 농담, 유머, 격언이나 글귀, 인용구 같은 거라는 것.
모이기 위해서 '긴 글'을 읽어야 한다면 만남이 훨씬 어려워진다. 어떤 책을 다 읽은 사람만 참여할 수 있는 북 클럽을 꾸리는 것과 똑같다. 장벽이 높다.
하지만 '짧은 글'은 모임 자체를 쉽게 하는 동시에 긴 글만큼이나 효율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을 끼리끼리 묶어준다
왜냐면 저 짧은 글, 유머, 농담, 글귀 같은 건 그 글자수 자체는 적어도 그것들을 이해하고 같이 즐기기 위해 필요한 맥락, 배경지식 같은 것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농담 한 줄을 듣고 그 의미를 똑같이 이해하고 '웃으'려면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이미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같은 언어를 써야 할 수도 있고, 문화적 배경도 비슷해야 할 것이고 정치적 입장도 어느 정도는 비슷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랑, 쓰기도 쉽고 읽기도 쉬운 짧은 글을 하루 종일, 말그대로 하루 종일 (화장실 가면서, 밥 먹으면서, 잠깐 짬 나는 사이에 등등 한 줄씩 '트윗'하며) 주고받으면서 놀 수 있는 곳이 트위터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럼 트위터가 제공하는 이 유대그룹과 그들이 생산하는 컨텐츠, 같은 농담을 보고 웃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의 조각들... 이런 것은 대체 가능한가?
사실을 말하자면 대체 가능하다.
그렇지만 대체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게 문제다.
트위터의 유대그룹이 대체 가능한 이유는 단순하다.
엄청나게 희귀한 성적취향이나 장애나 질병이나 정치관 같은 걸 가지고 있어서 바로 그런 것에 대해 얘기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트위터는 실제로 이런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커뮤니티를 제공한다)
누군가와 비슷한 농담에 웃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다.
트위터에서는 FUB Free 라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팔로우, 언팔로우, 블락을 자유롭게 하라'라는 의미다.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되게 이상하게 들린다. 당연히 팔로우 언팔로우 블락은 누구한테나 자유다. 열려 있는 기능이니까
하지만 그걸 자유롭게 하라고 명시해 두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실제로는 그게 자유롭지 않다는 의미다. 왜? 사람들이 트위터에서의 관계를 인간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트위터가 제공하는 유대그룹은, 훨씬 더 만들기가 어렵긴 하지만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냥 친구들이다.
현실에서 얼굴 보고 만나고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 친구들은 대부분 우리와 같은 농담에 웃는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우리의 생각을 수용한다.
차이점은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꾸리고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문제다
오프라인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한다. 같은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기도 하고 지리적으로 사는 위치가 가깝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이런 것을 공유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말소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첫째로 그 전까지 자원(시간, 감정, 돈, 힘...)을 투자하면서 만든 관계이기 때문에 그걸 포기하는 일이 어렵고
둘째로 이 관계가 사라지고 나면 빈자리가 남는다. 시간이 남고, 그 사람이랑 같이 보면 재밌었을 영화나 책이 남고, 그 전이었다면 그 사람과 했을 이야기들이 남는다. 그런 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고통스럽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인간관계를 맺고 끊는 일에 신중하고 조금 기분이 상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바로 당장 관계를 없애버리지는 않는다. 싸우기도 하고 사과하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유지한다.
그런 관계를 다시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한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트위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트위터의 유대그룹은 오프라인의 바꾸기 어려운 조건들(직장, 학교, 거주지, 문화, 시간계획...)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오직 취향뿐이다.
그리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위에 쓴 예외를 제외하면 차고 넘친다. 사람 한 명이 가지고 유지할 수 있는 친구 수보다 훨씬 많다.
게다가 트위터를 하면서 사용자는 유대 그룹을 위해 무언가를 '투자'하지 않는다. 그냥 말할 뿐이다. 140자 트윗을 올리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 그게 포인트다.
따라서 트위터에서 팔로우 언팔로우 블락은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 기능이다.
하지만 그건 어렵다.
트위터를 하다 보면 생각을 공유하게 되고, 생각을 필터 없이 '그때 그때' 말하다 보면 속마음을 쓰게 되고, 그러면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 보상은 무엇이냐면 내 솔직한 마음을 알면서도 나를 이상하게 여기거나 쫓아내지 않고 나와 계속 이야기를 나눠 주는 사람들 이다.
그런데 그 유대 그룹이 정말 서로를 이해해서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 사람들이 속마음을 드러내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언제든지 그곳에서의 관계를 끊어낼 수 있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여기에서 거짓이 발생한다.
트위터의 나는 무슨 말이든 해도 된다. 사람들은 내 말을 어지간하면 내버려 둔다. 오프라인 인간관계에서 으레 등장하는 '필터링'의 의무,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고민 없이도 아무 말이나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으며 내게는 그 사람들을 붙잡을 기회가 없다.
다시말해 나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내 말을 잘 들어 주는 청중을 얻은 것 같은 기쁨이 내게 제공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조용한 것은 내 말을 이해해서가 아니다. 현실의 인간관계와는 달리 떠나기 전에 경고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얌체 짓은 말하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치 솔직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용기내어 들려주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런 고려도, 생각을 잘 다듬어서 내놓으려는 노력도 없이 재채기나 구토처럼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건 트위터에서(혹은 인터넷 전반에서) 말하는 사람은 수용적으로 듣는 사람을 찾았다는 기쁨을,
듣는 사람은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을 찾았다는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말하는 쪽도 듣는 쪽도 이 관계가 얄팍하고 연약한 것이며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자유로운'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기뻐한다.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기쁨은 인간에게 너무나 강렬한 것인데다, 그들은 그런 기쁨을 얻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으므로 마치 복권에 당첨되거나 공짜로 무언가를 얻은 것 같은, '이득을 본 것 같은' 기분에 도취된다. ('이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은 도박이 사람들을 끌어당길 때 필수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팔로우 언팔로우 블락이 자유롭지 않다.
FUB FREE가 내걸고 있는 자유는 '나는 머리로 가슴을 통제할 수 있어요'라는 식의 허세일 뿐이다.
지난 글에서 나도 이렇게 썼다. 트위터는 농담들이 specific하다고. 그리고 조각난 글들이 올라온다고
글은 언제나 더 구체적이고 내밀한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이런 것은 나한테 대체 가능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말하고 싶어지고 무언가 허락을 받거나 approval을 요구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트위터를 하면서 보내는 시간도 점점 길어짐
무엇보다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와 현실에서 진짜 친구 관계를 형성할 때 하게 되는 약속(비밀 지킬게, 네 이야기 잘 들어주려고 노력할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도울게... etc)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우정을 얻고 있는 것 같다는 게 때로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뭔가 사기 치고 있는 기분
그리고 동시에 남들도 나한테 사기를 치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20대가 SNS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은 그것대로 좀 이상한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젊은층에게는 온라인 세계가 그냥 일상을 영유하는 하나의 차원 같은 거라
그래서 SNS를 아예 끊진 않고 블로그를 하고 있는데
트위터를 관두고 블로그로 건너온 뒤로는 만족도가 되게 높다.
우선 타임라인과 멘션(트위터에서 누군가에게 직접 트윗을 보내는 기능) 대화를 통해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글을 쓰고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 아래에 곁다리로 댓글을 쓸 수 있을 뿐이니까
시스템상으로도 우와!! 우리 뭔가 대화를 하고 있다!! 라는 기분이 좀 더 줄어들뿐더러
하루 종일 붙들고 있는 앱이 아니라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도움이 되고 시간 조절도 편함
(블로그에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께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지만 제가 님들에게 그렇듯 님들도 저에게 별 영향력이 없는 것이지요
오프라인에서 만나거나 뭔가 관계가 확장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블로그는 긴글을 보고 쓰기 때문에 '이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별로 크게 자극되지 않는다.
무언가 쓴다는 것 자체가 좀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하는 노력 때문이기도 하다.
이 블로그에 글 쓸 때 신경 쓰는 건 두 개 정도인데
첫째로는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서 조금이라도 구조를 갖춘 상태로 내놓으려고 하는 것이고(이 글이 올라가는 카테고리가 일기이기는 하지만 여기가 진짜 일기장은 아니니까. 여기에 글 쓸 때 나는 분명히 누군가가 읽을 거라는 걸 전제하고 쓰는 것이고 그렇다면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글을 내놓아야 한다)
둘째로는 누가 내편이고 누가 쟤편이냐 라는 질문에 눈이 돌아간 사람들을 끌어당길 만한. 그런 사람들이 너 우리편이구나!!!! 하고 다짜고짜 따봉과 찬사를 날릴만한 글은 쓰지 않는 것이다.

이런 원칙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댓글을 써준다면
그건 '사실은 나에 대해 조금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좋게 느껴지는 긍정적 피드백을 주는 것'이 아니고
나에 대해 조금(정말 조금이지만 어쨌든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이 무언가 자기 생각을 돌려주는 것이다.
누군가가 글을 진지하게 읽어 준다고 해도 댓글을 남기지 않는다면 난 그런 읽기가 발생했다는 것도 모른다.
따라서 블로그에서는 "누군가 내 생각을 듣고 받아들여 줌"이라는 기쁨이 막 생성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마 여기에 중독되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반응이 돌아온다고 한대도, 내가 글을 열심히! 공들여! 써서 좋은 반응이 돌아오는 것은 블로그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내 인생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공간인 내 직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 (첫번째로 중요한 공간은 집)
그래서 나에게 블로그가 주는 즐거움은 대체 가능하다. 굿 이너프다.
나는 인터넷이 주는 모든 것이 good enough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멋있거나 충격적이거나 가치 있지 않아서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사실 내 인생, 손으로 만져지는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보다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일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멋있고 충격적일 때가 많지만
그것들을 얻기가 너무 쉽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 영화가 4200만 개 있을 때에는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할아버지의 골방에 있는 VHS 25장이 내가 가진 문화의 전부였을 때에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난 아직도 '뮬란'을 보면 운다
물론 내 실제 삶에 있는 많은 것도 대체 가능하다.
하지만 삶과 SNS를 두고 보자면 삶이 훨씬 더 소중하다. 삶이 훨씬 더 힘겹고 나한테 더 많은 책임감을 요구하니까
그걸 통해서 삶이 나한테 주는 자유는 진실된 것이다
공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 그래서 망가졌을 때 복구하는 일도 어려운 것, 그래서 망가질까봐 두려운 것,
그런 것을 가져야 그것을 유지하고 돌보고 키우느라고 바빠할 수 있고
내가 무언가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살아 있고 바깥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