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추석맞이 부산

을말 2023. 10. 2. 18:44

ㅎㅇ

추석연휴가 개천절이랑 겹쳐서 길게 이어지는 바람에 뭘 할까 고민하다 (맨날 하던 대로...) 부산에 왔다

2021년 6월에 성인 되고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갔는데
미자 때부터 여행이야 맨 혼자 다녔으니까 혼자라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지만 일하는 성인이 되었다는 게 중요했달까
돈을 막 쓸 수 있으니까 좋드라구요 노숙도 안하고 밥도 편의점 주먹밥 안 먹고 제대로 된 밥집 가서 사 먹고
하여튼 그때 간 곳이 부산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해운대였다.

지금 온 곳도 부산이고 해운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국내여행은 해운대 말고는 가본 적이 없음 돈과 시간이 생기면 그냥 해운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운대를 감
갈 곳은 정해져 있고 난 돈만 벌면 됨

'부산' 여행이라고 하기도 뭐한게 내가 해운대에 갔다고 하는말이....

2017년쯤부터 해운대를 이런 식으로 오기 시작했는데
수도권이랑 해운대를 잇는 해운대버스터미널이 있음.
이번에 와보니까 요새는 중동역에서 타고 내리던데
옛날에는 작긴 했지만 정류소가 있어가지고 대합실에서 쉴 수도 있었음
보통 밤차나 새벽차를 탐. 밤차 타면 새벽 5시 도착이고 새벽차 타면 오전 11시 정도 도착

시외버스를 타고 5시간 정도 걸려서 해운대버스터미널에 오면 거기서부터 해운대 바다까지 이동
옛날에는 터미널부터 바다까지 걸어서 20분밖에 안 걸렸는데 위에 말했지만 요새는 중동에 내려주기 때문에 지하철역 한 정거장 정도 거리를 걷거나 버스 타거나 지하철 타야 함
어느 쪽이 됐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짐가방(보통 1박이나 길어봐야 2박 하니까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오면 됨) 들고 바로 바다로 감

해운대역에서 해수욕장 방면 출구로 나오면 쭉 광장 메인거리가 펼쳐지는데
거기 다이소가 있음. 거기서 삼선쓰레빠랑 돗자리를 하나 삼
이번에는 돗자리가 품절이길래 비치타올을 샀음

메인거리에서 관광객의 인파를 헤치며 바다 방면으로 쭉 걷다 보면 편의점이 몇 개 있음
아무데나 들어가서 맥주 한 병 담배 한 갑 삼 (미자때는 사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나이 되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얻었음)

바다가 딱 나오면
제일 사람 없어 보이는 구석으로 간 다음에
물 바로 앞에 비치타올이나 돗자리를 깔고
맥주를 꿀꺽꿀꺽 다 마심
맥주병을 재떨이로 쓰기 때문에 담뱃불 붙이기 전에 다 마셔야 됨
다 마시면 담배 한까치 딱 물고 그대로 피움
다 피우면 맥주병 안에 꽁초 집어넣고
비치타올 위에 가방 올려놓고 신발이랑 양말 벗어서 옆에 놓고 슬리퍼 꺼낸 다음 바다 들어가서 놈

바다에 얼마 정도 들어가느냐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름 겨울에 가면 그냥 발만 담그고 여름에는 옷 벗고 입수
입수할 때는 나시+팬티+반바지
그 위에 셔츠+후드+치마 조합이 제일 좋음. 이 2군 옷들을 싹 벗은 다음에 물놀이 할만큼 하고 타올로 몸 대충 닦고 그대로 다시 입으면 됨

놀다 나오면 배고파지니까 쓰레빠 신고 거리로 나가서 아무거나 사먹고 배 채움
다음엔 커피나 차 한 잔 사가지고 와서 자리에 앉아서 바다를 봄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봄 주구장창 봄 눈 아플 때까지(이런 식으로 바다를 보는 건 눈에는 안 좋을 것 같음 선글라스를 낍시다)
짬짬이 담배를 피움
날씨랑 체력이 받쳐주면 한 번 더 입수함
보통 여름에 오면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올 때 2시간 정도 걸림 <-이게 신기하더라. 난 생체시계란 게 있긴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시간개념 없는 사람인데 바다수영은 꼭 잘 놀고 와 이제 나가야겠다 싶어서 보면 2시간 지나 있음

바다 봄 -> 배고프면 뭐 먹음 -> 바다 봄 을 반복하다 보면 밤이 됨
그러면 12시 밤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든지
메인거리로 다시 나가서 24시간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 잔 시키고 졸다가
새벽 한 4시쯤 되면 도로 나가서 새벽바다랑 해 뜨는 거 구경하고 아침차 타고 집에 옴



즉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버스 터미널에서 내리고 나서는 반경 만보 정도를 벗어나지 않음..... 이걸 부산 여행이라고 부르기는 좀
그냥 해운대 여행임
이것은 부산에 짝남이 있었던 낭랑 십팔세 시절 정립된 여행 방식으로... 지금까지 한 5~6회 정도 반복되었고 앞으로도 시간 날 때마다 반복할 예정입니다 나한테 너무 잘 맞아


하여튼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여행을 진행하였읍니다



동서울 터미널


왠지 모르게 잠이 안 와서 밤을 새고 와가지고 이 사진 찍자마자 장렬히 전사함
양산 도착해서야 깼는데 목 아파 죽는 줄 알았음



계획대로...
아 사실 버스 처음 탈 때쯤엔 부산 오면 돼지국밥 먹을 거니까 소주의 유혹이 강하겠구나 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요새 불자가 되려고 애쓰고 있으니까 실라를 지키기 위해 잘 참아보자 라고 생각했는데
바다 보자마자 걍 몸이 기억하는 대로 움직여서 바로 실패함
해운대는 그냥 평생 예외로 해둬야할거같음
자유흡연음주구역



입수.
해운대는 8월 말 되면 보통 폐장되기 때문에 안전요원이 없고
10월이라 어쨌든 날씨가 선선하길래 그냥 발만 담그고 놀까 싶었는데
너무 오랜만이었어서 그냥 옷 다 벗고 속옷만 입고 들어가서 수영하고 왔다. 30분 정도...
나오고 나서 시간을 보니까 생각보다 되게 짧게 놀고 나왔음. 더 할걸

해수욕장이 폐장되어도 해운대의 경우 입수 자체는 1년 내내 가능합니다. 단 안전요원이 없으므로 본인의 안전을 알아서 잘 지켜야 함
저는 바다수영 원래 좋아하고 물개과라 물에서 죽을 일은 없을 거 같은데다
친척중에 수심이 채 허리도 안 되는 강에서 죽은 사람이 있어서 절대로 깊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해운대에서 바다수영 한 것은 글머리에 언급했던 2021년 6월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장장 2년 3개월만에 왔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바다에 들어가자마자 "보고 싶었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음


부산에서 이 표시는 존재이유가 있기는 한 것인가




버스 타고 보니까 10월 6일부터 버스요금 인상한다더라. 잘 왔다 싶었다
홍콩 여행 갔을 때도 반환일이랑 딱 겹쳐서 트램 공짜로 타고 다녔는데 기분 업됨

그리고 의외로 해운대구ㅡ수영구 오가는 버스노선들이 눈에 익길래 ㅋㅋㅋㅋㅋㅋㅋ 야 아직 이걸 기억하네 싶어서 반가웠다




수변최고에서 수육백반 주문대기 걸어놓고 나와서 수변공원서 한대 폈다
근데 필터까지 다피우고 고개를 딱 돌리자마자 보이는 금연싸인
죄송합니다

이때 내 앞에 대기팀 110팀이라고 해서 ㅅㅂ 고민고민 하다가 기다리기로 했다 수변최고의 수육백반은 그럴 가치가 있음
광안리까지 슬슬 좀 걷다가 해변은 왠지 안 땡겨서 관두고 다시 민락역으로 되돌아갔다

옛날엔 몰랐는데 수영만 근처 걷고 있으니까 바다내음이 엄청 강했다. 그 자체가 강하다기보다는 강내음이랑 섞여 있으니까 더 잘 감지됨
민물 비린내 위에 딱 한 겹 덮여 있는 짠내가 엄청 좋았다 이 근처 살고 싶다는 생각에 막 몸이 떨림
물 섞이는 지점 좋지요



온다고 욕봤제



귀여웠음



꽃이 많이 펴 있었다.
이름을 찾아봤다. 댕강나무라고 한다



1~2년만에 보는 물고양이들
수변공원에서 낚시 하는 아저씨들한테 이것저것 잘 얻어먹는다
재작년 왔을 때에는 열마리 가까이 있었는데 다 어디갔나 했더니 어려졌드라.
새끼 낳고 그 다음엔 어디로 갔을까?
잘 살고 있을까?

난 지금도 고양이는 별루다.




오후 네 시의 수변공원로



이거 보고 너무 귀여워서 뿜었다
네 찍었어요







1시간 반 기다려서 먹은 수육백반
배고파가지고 사진을 거지발싸개처럼 찍어놨는데
천상의 맛이었다 하아아아아아아아
부산 최고 돼지국밥 최고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 몇분들께서 혼자 여행하는 거냐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시면서 살갑게 맞아 주심
밥 먹고 나가실 때에도 나한테 여행 재밌게 해요~ 하고 인사해주심
내가 진짜 라디오에서 나올거같은 표준말을 구사해가지고 조금만 서울을 벗어나면 촌년티가 확 난다 모두가 관광객인 걸 알아봄
따뜻한 인사였어서 기쁘고 감사했음. 추석 잘 지내시기를


이젠 그전처럼 애새끼가 아니니까 해운대구에서 벗어나면 뒤지는것처럼 굴던 전통을 깨고 버스 타고 좀 돌아보기로 했음
이곳저곳에서 추천받은 5-1번 버스를 타고 부산항까지 갔다가 1011번 타고 광안대교 건너서 해운대로 돌아가는 코스임

지금 5-1번 버스에 탄 상태인데 부산항 쪽에서 520번으로 갈아타면 사하구 지나 가덕도까지 돌아볼 수 있다길래 그걸 탈까 말까 고민 중...
5-1번은 소문대로 다이나믹하다. 어릴적 번화가 가면 있었던 8분정도짜리 4D 액션/호러 체험기구 정도의 진동과 흔들림이 40분째 계속되고 있음
203번 버스 타려고 온천장까지 갔던 때도 있었는데 기억이 새록새록하군... 203번은 한번 타러 가볼만 합니다 여러분

부산데파트에서 88번이 16분 후 도착이길래 기다리면서 멍 때리고 있었는데 87번이 떡하니 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니나 갸나... 하고 탔다
재밌는 풍경 보여줄거니? 보여주라. 너 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 도둑놈의 새끼야 내가 니 기필코 잡을 거니까 잡히기 전에 자수해라 라고 쓰지 않고
"분실물 알림"이라는 너무나 정중하고 완곡한 표현을 쓴 것에 약간 감동을 먹음



고민의 흔적

1011번 후기:
광안대교 쪽은 별볼일 없었고
의외로 부산항대교 쪽이 진짜 예뻤다
다음에 오면 왼쪽 좌석에 앉아서 구경 제대로 해야지


오전 4시 반
동서울터미널에 도착은 했는데 지하철도 안 열리고 터미널도 안 열리고 길바닥에 버려짐
술도 깨고 정신이 너무 맑아져가지고 편의점 들어와서 보리차 500ml 원샷하고 앉아있다 첫차시간 맞춰서 나옴

바다수영도 너무 늦기 전에 했고 밥도 맛있었고
좋은 여행이었다
추석마다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