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할머니가 요양 병원에 가게 되셔서 오랜만에 모 도시에 갔다.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
오늘은 부인이 야근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 길 구경이나 하려고 다소 돌아가는 버스를 타보았는데
태어나서 첫 몇 년 그 뒤로도 스물 몇 살까지는 생활 반경 안에 들어 있는 동네였기 때문에 간만에 보는 눈에 익은 곳들도 많았고 가보지 않은 길을 봐도 어쩐지 느낌이 익숙했다. (사실 한국은 동네가 거진 다 비슷비슷하게 생기기도 했고)
옛날에 다니던 골목들 식당들을 보니까 자연히 그 때 어울려 다니던 사람들도 생각났는데
연락이 아직 닿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니까 그 사람들은 모두 이 동네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게 생각났다.
나는 두 달 뒤면 태평양을 건너서 떠나간다. 중학생 때쯤부터 막연히 생각했던대로
딱히 아주 낙후된 동네도 영세한 동네도 아니었는데 (유흥가가 많고 치안이 좋지 못하긴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난 이 동네를 "이 거지같은 놈의 시골바닥" 정도로 생각했다. 주변 어른들이나 친구들이 모두 의아해할 정도였다
절대로 내 인생을 이런 데에서 다 써버리지는 않겠어, 이딴 동네에서 결혼하고 애 낳고 산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해 무슨 수를 써서든 여기를 떠나갈 거야, 이런 구질구질한 동네를 벗어나서 어딘가 넓고 근사하고 빠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 거야
그런 생각에 엄청 매달리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 또래들을 이상하거나 멍청한 사람 취급하던 것도 (어려서...)
"멀리 떠나는 것"에 대한 욕망의 크기는 사람마다 정말 다른 것 같다.
지금은 이 동네 근처에서 살고 있는 그 시절의 친구들이 모두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는 걸 안다
도시로 떠나는 여자~ 동네에 딱 하나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보내주고 끼릭끼릭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남자의 뒷모습~ 이런 이미지도 떠오르는데 이건 무슨 영환가? 내가 어디서 이런 걸 본 적이 있나? 아무튼...
이 강한 욕심의 동력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궁금했었다.
어디에나 강한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보통 그런 사람들이 이야기책 속에 많이 있다. 난 진짜 큰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친구가 없고 책은 많이 읽어서 보고 배운 게 욕심이 많은 삶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책 속의 그런 인물들의 공통점이 뭐냐면 무언가 "위대한 것"을 찾고 있었다는 거다. superhuman power~ 한계를 거스르는 어떤 것.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전율하게 하고 감동하게 하는 어떤 것. (거대한 부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때가 있다)
그런 욕심은 대부분 죽음에 대한 강렬한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말했다. 자기는 참전을 했기 때문에 신학을 하게 되었다고
인간에게 죽음과 사랑받지 못하는 일은 연결이 깊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사라지는 것. 죽는 것.
그러니까 아마 친구가 없을수록 욕심은 커지는 것 같다.
만화나 소설에서도 자주 보이는 듯... 모종의 이유로 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난 여기를 떠날 거야 라면서 들어보지 못한 어떤 멋진 곳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걸 지켜보는 화자, 이런 그림
지금도 난 친구가 없던 시절에서 별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그 때 느꼈던 감정들과 싸우고 있다.
그래서 질서에 매달리고 학문에 매달린다. 복잡하고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서
하지만 그렇다고 그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건 아니고... 똑같은 걸 느끼고 있지도 않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의식적으로 남의 도움을 많이 받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요즘엔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그 감정을 잘 해소하기 위해서 또 그 감정 덕분에 만들어진 강한 의지나 힘을 낭비하지 않고 좋은 쪽으로 톡톡히 활용하기 위해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공동체가 필요하다
많은 게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동네에 올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그냥 나쁜 게 아니라 속이 꼬일 정도로 나쁘고 이 좆같은 시궁창에서는 십 초도 견딜 수가 없어!!! 하고 속에서 뭐가 난리를 친다
그게 이 동네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안다. 그건 기억 때문이다
여기로 돌아오지 않을 거다.